들어가며
: 이폴리트 바야르, 2023
사진의 역사가 담긴 책을 들여다보면서 처음으로 동요했던 순간은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라고 불리는 이폴리트 바야르(Hippolyte Bayard, 1801~1887)의 사진을 보았을 때다. 그 사진은 이폴리트 바야르가 자신이 최초의 사진법을 선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진이다. 이폴리트 바야르는 ‘알부민 글라스 온 타입’이라는 달걀 흰자를 이용한 종이 사진법을 연구하고 완성하였으나 정부의 권유로 발표를 미뤘다. 그 사이 프랑스 정부와 다게르가 은판 사진법인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공표했고, 다게르가 최초의 사진이라는 온전한 명예와 권력을 차지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시체는 방금 본 사진의 발명가인 바야르 씨의 시체입니다. 내가 아는 한, 이 지칠 줄 모르는 실험자는 그의 실험에 약3년 동안 몰두해 왔습니다. 다게르 씨에게 관대했던 정부는 바야르 씨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불쌍하고 가련한 이 신사는 스스로 익사했습니다. 오, 인간의 삶, 그 변덕이여…! 그는 며칠 동안 영안실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신사의 얼굴과 손이 썩어가기 시작했으니, 냄새가 두렵다면 지나치는 게 나을 겁니다.’
바야르는 사진 안에서 죽음을 연기했고 그 뒤에 위와 같은 글을 덧붙였다. 나는 그가 배우가 되어 죽음을 연기하는 것도 좋았고, 항의하는 마음을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초연하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좋았다. 제3자가 되어 마치 희곡과 같은 글을 적어 내린 것도 무척이나 좋았다. 전쟁 사진이나 고발 사진을 찍은 사진가들이 영웅처럼 각광받았지만, 내겐 자신의 남루함을 사진으로 표명하고 떠나버린 이폴리트 바야르가 더욱 반짝였다.
그가 사진 안에서 죽기로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비참한 시간을 보냈을지 나는 가늠할 수 없다. 그는 죽음이라는 형식을 사진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 형식으로 나를 잠시간 훼손하면서 최대한으로 진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이폴리트 바야르가 내게 보여준 저항의 추동을 믿는다.
저항의 자손들에게
ㅡ 개인전 <부족한 별자리>를 지으면서 쓴 산문,
이 전시의 프린트는 계란 흰자를 이용한 알부민 프린트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