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고 얕은 죽음, 2020
올해는 시간을 어떤 단위로 세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무성하게 부푼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몸으로 사는 게 이렇게까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때는 또 처음이다. 폭력을 멈추라고, 절규를 들으라고 허공에 외치다가 얼굴이 붉어진 채 잠든 날이 있었다. 가해는 검은 그림자, 그들의 몸집은 자꾸만 커지고 우리는 몇 번 죽었다.
"저는 괜찮아요.”
"아뇨. 예지 씨. 괜찮지 않아요.”
습관처럼 괜찮다고 말했지만, 상담 선생님은 내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해지니 내 심리 검사 결과지가 난도질이 난 모양이다. 대면 상담이 불가능해지자 상담 선생님과 상담 센터장님은 강한 어조로 약물을 권했다. 마스크를 쓰는 일상과 함께 나는 기어코 거부했던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알약 몇 개를 입에서 굴리고 내 기분이 영원히 나아지는 상상을 했다.
핸드폰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굴리다가 나와 비슷한 나이인 한 여성의 유서를 읽었다. 단조롭고 경쾌하다는 점에서 의아한 기분이었다. 뉴스는 20, 30대 여성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를 하고 있다. 길고 얕게, 자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