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악과 귀, 2016
모계로부터 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지도 못한 내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 그 처자 이목구비가 큼직하고 곱상했지. 노래도 곧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렸어. 그 끼를 펼치지 못해 그 길로 가버렸어. 허여멀건 하게 염증이 났지. 금을 만지던 네 피는 청산가리를 마시고 죽었고, 또 다른 피는 쥐약을 마시고 위가 녹아서 서서히 죽어났지. 죽고 또 죽었어. 그게 꼭 피어나는 것처럼. / 돌을 남기고 갔어. 가진 게 돌 뿐이니 돌만 가득 남겼네. 그게 네 보호수야. 계집애 변두리에 볕도 바람도 아닌, 돌이 굴러다녀. / 모계로부터 오는 것. 그 돌이 병과 악과 귀야. / (반복한다) 병과 악과 귀야.
제 아비가 예수를 만났네. 그 손길에 자기가 건실해졌어. / 네 엄마이자 언니인 자의 자궁을 앗아간다. 기원을 베어간다. 계집애야, 너는 이제 고아야. / 아비의 팔 위엔 물기둥이 뚝뚝 떨어지네. 주름진 얼굴에서 떨어지던 것과 같은 것이야. 가뭄이 오길 기도하렴. 물이 마를 틈이 없어서 뿌리가 문드러지네. / 생은 왜 간사한가요. 죽음에 당도한 얼굴만 많고 죽음의 얼굴이 없어요. 내 삶에는 저주만 붙어있어요. 나는 낱낱이 저주할 거예요. / 짐승의 눈, 비트는 재주, 채색하는 기류. 병사, 네 피가 지나간 자리들. / 조른다. 목을 조른다. 무게만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