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2019
작은 나는 엄마의 몸에서 일찍 떨어지고 싶어 했고 엄마는 나를 살리기 위해 다리를 묶어 올린 채 두 달을 살았다. 그 배에는 생명이 자주 오갔지만, 탄생은 적은 일이었다. 나는 세 번째로 태어났고 두 번째로 살아남았다. 첫 번째로 태어난 언니와 나 사이에는 삶이 하나 있었다. 삶의 주인이었던 이는 우리와 같은 여자였고 모두가 눈을 떼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실체를 마주한 적 없는 유령이지만 내게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에게 유령을 말하면 슬펐다고, 아주 슬펐다고 대답한다.
죽어가는 딸을 안고 달리는 시간은 내가 셈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열 달의 형상과 현상이 사라졌다. 이름은 없었다. 의사는 상실을 무뎌지게 하려면 누군가를 만드는 일밖에는 답이 없다고 했고 그 누군가는 내가 되었다. 나는 어떤 상실을 상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내가 몇 살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 시간의 축이 자주 흔들리는 것이 어쩌면 유령과 나의 접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내 애도했다.
예쁘게 지었다는
내 이름. 네가 예지였을지도 모르지.
네가 먼저 태어나고
내가 먼저 봄을 밟았는데 누가 언니를 할래.
우리는 부풀어오르는 배를 환대하지 않았어.
때로는 태어나고 싶었지. 네가 버린 시간에. 우리가 낙오되는 점을 기다렸어요.
하루는 엄마와 침대에 누워있었다. 엄마는 제법 큰 나를 쳐다보며 내가 작아져서 자신의 뱃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젖이 나오지 않는 몸으로 자기의 가슴을 입에 머금어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의 가슴을 입에서 몇 번 둥글리다가 뗐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혀가 그린 기록이 얼얼하게 남았다. 다시금 기원이 된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세차게 피어올랐다. 하나의 신화가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태어난 순간부터 여자라는 이름의 연대기가 시작되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고 여자의 생을 빌렸고 여자를 사랑했다. 여자의, 여자라서, 여자인. 그 이름이 내게 드넓다. 숭고한 표정을 짓는다. 쓰러진 등줄기는 능선이 되었고 갈라진 피부는 개천이 되었다. 서로의 팔목을 잡고 원을 그린다.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우리야. 비릿한 만큼 창조야.
ㅡ 개인전 <마고>를 지으면서 쓴 산문